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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Congratulate an Artist

When the New Yorker published my friend’s poem, I wasn’t surprised. I was thrilled and excited and proud but, as I’d fully expected such a thing since I first encountered my friend’s work, I was not surprised in the least. 758 kata lagi

Art

Are Democrats so invested in an anti-American Iranian regime that they cannot support the protestors? Liberal internationalism is dead.https://t.co/ockk1hyB6G

— Stephen Hayes (@stephenfhayes) January 6, 2018

팬덤, 무한한 다양성을 키울수 있는 곳

다른 생활습관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인간 본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의 학교를 모르겠다. – 몽테뉴 –

먹고 살기 위해 이미 받아본 선택지가 수 십장 이었을테니 먹고 사는 일과 상관없는 일에서도 선택지에서 무엇인가를 골라야한다는 것은, 분명 귀찮은 일이다.

사람들에게 문화란 그저 고민없이 편히 누려도 될 것들이다.

그러니 ‘베스트 셀러’, ‘천만 관객’, ‘음원 차트 100위’ 이미 다 차려놓은 상위의 음식을 즐기듯 즐겨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다 차려놓은 상위의 음식 말고도 더 다양한 것들을 즐길 수 있다거나, 넓지 않은 상이다 보니 오르지 못한 음식은 당연히 많고 이 음식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 하지 못해도, 이 역시나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닌거다.

하지만 우리가 손쉽게 누리는 문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문화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감정의 세분화, 다름의 향유다.’ –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문화는 다름의 향유라는데!!! 우리는 과연 ‘다름’을 향유하고 있어왔는가?

은유 작가님은 문화를 정의하시면서 우리는 양산된 ‘감정의 평준화’안에서 나쁜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감정의 평준화’를 양산하는 주범은 ‘대량생산’해서 ‘대량소비’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겠다는 창작자들과 대중사이에 있는 중개자들이다. 그리고 특히나 음악시장에서는 중개자들의 계획대로 ‘대량소비’의 축이 되어주고 있는 ‘팬덤’도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주류는 아니더라도 ‘팬덤’ 또는 ‘덕질’로 불리는 현상의 최전방 어딘가쯤에 서고보니 나는 이전과 다른 ‘생활습관’에 자연히 노출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인생과 꿈을 상상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내 덕질은 주류라 불리는 대상을 향한 것은 이니지만 그렇게 불렸다면 알지 못했을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대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양성이 가지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볼테르가 말한 ‘가장 나은 삶의 학교’에 입학을 했다.

문화의 진정한 핵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류에 속하지 않는 비주류임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을 응원하는 일, 100위 밖에 있어도 그들을 위한 팬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특정 문화 컨텐츠만을 위한 중개자들의 무차별적 홍보 전략에 편승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해당 문화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에 오래 붙잡아 두려고 하는 주류 팬덤이 주변을 조금은 돌와봐주기를 바란다. 주류가 아님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성을 생산해 내는 아티스트들도 먹고 살수 있게 시장의 파이를 좀 나누어 가지게 해주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뱔견하고 이를 통한 감정의 세분화를 느끼고 다름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함께 몽테뉴가 말한 무한한 다양성의 학교를 만들 수 도 있는 일이다.

Reviewer

“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100위 그리고 카메라 밖에도 음악이 있고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아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하는 무심함 때문에,  그들만의 잔치에 끼지 못할 때 주어지는 박탈감 때문에,  나는 괜히 혼자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래며 연말을 보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역시나 무심했었던, 박탈감을 안겨주던 대중이었던 적이 있었기에 또 괜히 혼자 지난 날을 반성하며 연말을 보냈다.

이제는 보이는 그 ‘선’ 근처에 모여든 턱걸이 하는 모습들…
어떻해서든지 철봉을 붙잡고 턱걸이를 하는 것 처럼, 팔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서 위로 오르려고 안간힘을 내고 있는 간절한 목소리들이, 힘을 내는 얼굴들이 보이는데

누가 감히, 당신들이 뭐라고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재단하려 드는건지…

말도 안 되는 이 프레임에서 모두 다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고 있으니, ‘우리도 경쟁을 하고 순위에 올라야 한다.’며 정직하지 않은 방법을 궁리하고 함께 하자 독려하는 것이, 나는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앉은 뱅이는 도와주겠다는 예수께 ‘나를 저 연못에 넣어주세요.’라고 부탁헸지만, 예수께서는 대뜸 ‘너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데스다 연못가에도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이 존재했다. 진짜 치료가 필요한 병이 심한 자들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기에 몸을 움직이기가 수월했던 사람들이 베데스다 연못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뛰어들어가 고침을 받았다. 이렇게 프레임이 정해져 있으니 앉은뱅이가 바라는 (혹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나를 들어 연못가에 넣어 주는 것’이었겠으나, 예수께서 보시기에 이건 말도 안되는 부탁이었던게 분명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너의 상상 너머의 일인데 고작 내게 이런 하찮은 부탁을 하다니!!!’ 하시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아주 쿨하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하시며 앉은뱅이를 낮게 하셨으니 말이다.

엉뚱하게도 나는 분노와 반성으로 연말을 보내면서 내내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나도 ‘너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이런 초월적인 발상이 떠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더 엉뚱한 상상도 함께 하면서…

사족…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야기는 신학적으로 아주 엉뚱한 해석이 아닙니다. 혹 저의 정신세계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실 분들이 계실까 싶어서….

Reviewer

@tparsi and his goons at @NIACouncil should be sanctioned by the US government and their operations ceased. A lobby for the so-called “reformists” of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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